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당의 2차 동정 (문단 편집) === 천중밍의 반격 === 양시민, 유진환의 반란 때문에 동정군이 대부분 철수하고 이어 8월 20일에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 등에 휘말려 국민정부가 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본 천중밍은 광저우 공격을 준비하고 9월 11일, 홍조린과 임호로 하여금 병력을 삼로를 나누어 동강을 치게 했다. 국민혁명군 일부 부대가 매현과 조주에 배치되어 있었으나 반란군의 병력이 3만에 달해 금방 압도당하여 퇴각했고 반란군은 광저우 동쪽 150킬로미터 지점의 평산에 이르렀다. 보령, 혜래, 게양, 조양 등 4개 현이 함락되었고 동강의 상당수 지역이 다시 천중밍의 손에 들어왔다. 9월 16일, 천중밍은 유지육을 총지휘관에, 이역표를 전적지휘관에, 사문병, 왕정화, 임렬을 각각 좌중우로 지휘관으로 삼고 광저우 동남부의 등본은에게 남쪽에서 협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농민부 비서 [[펑파이]] 등은 강경하게 2차 동정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정부 군사위원회는 2차 동정을 실시하기로 결정, 9월 28일 장제스를 동정총지휘관에, [[왕징웨이]]를 당대표에, [[저우언라이]]를 총정치부 주임에 임명하고 소련고문 로가챠프를 군사고문으로 삼았다. 그리고 [[허잉친]]을 1종대 지휘관으로 삼아 중로군 1만명을 거느리게 했고 리지선을 2종대장으로 삼아 우로군 1만 2천명을 거느리게 했으며 [[청첸]]을 3종대장으로 삼아 좌로군 6천명을 지휘하게 했다. 10월 1일 동정군 총사령부는 동정개시 명령을 내려 10월 6일 각로의 종대가 전선으로 떠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